사연 있는 아침은 늦잠이 없다

사연 있는 아침은 늦잠이 없다

글 | 궁금이 · 방송 | 전금화

사연 있는 아침은 늦잠이 없다

   어제는 엄마의 기일이였다. 양로원에서 아침식사를 하시다 돌아가신 엄마는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계셨다. 그러고보니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어느날이였던지도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로원에 모셔놓고 그 사이 일부러 찾아뵌 건 설밖에 없었다. 그 외에 찾아뵌 건 다 출장길에 그냥 잠깐씩 들렸을 때였다. 찾아뵈였을 때마다 이제 가봐야 된다고 하면 그래 빨리 가라는 말밖에 엄마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번은 내가 이미 양로원 건물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왔는데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높았다.
   “**야, 잘 가라”
   양로원 건물 3층 복도에서 손을 저으며 부르는 소리였는데 꽁꽁 닫힌 창문을 뚫고 주차장까지 들릴 정도로 또렷했다. 전에는 그냥 침대에서 바래던 엄마가 이날은 복도까지 나와서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보내고 복도의 창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냥 하던 대로 나는 다시 한번 손을 저어 들어가시라 하고는 그냥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게 엄마가 나한테 한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그때 그 잘 가라는 인사는 잘 있으라는 말이였다. 무슨 예감이 들어서였을가? 그럴줄 알았더라면 다시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걸…
   지난해 이날도 나는 친구를 불러냈다. 약속된 장소에 먼저 도착하여 혼자 앉아서 맥주를 시켰는데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친구한테는 엄마의 기일이란 말을 못하겠고 오기전까지만 눈물을 흘리면 된다. 나에게는 눈물이 나는 날이지만 다른 사람까지 비통해 할 의무는 없다. 하물며 주변에 엄마를 보낸 친구들이 나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다 슬픔을 하나 쯤 간직하고 산다. 그리고 술은 원래 기분이 좋자고 마시는 액체이니 그냥 웃으며 마셔야 한다. 친구하고 앉아 있으면서도 수시로 나만의 생각을 하며 그날은 잔을 많이도 비웠다.
   어제도 참다가 끝내는 친구 한명한테 저녁에 다른 약속이 없냐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했다. 이미 전날에 다른 모임에서 술을 마셨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전화를 했다. 평소에 모이면 북적북적했는데 어떤 날은 정작 부르자고 보면 딱히 전화할 데도 없는 때가 있다. 친구는 감기가 왔다면서도 흔쾌히 한잔 제안을 받아줬다. 만약 립장을 바꿔서 내가 전날에 술이 잘 되고 감기까지 걸렸다면 친구의 술제안을 수락했을가 라는 역지사지의 생각도 하게 된다. 어제도 역시 엄마생각에 한잔 하고 싶어서 불러냈다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잔을 기울였다.
   이제 우리는 술 종류도 자기 입에 맞는 대로 선택하고 술량도 강권하지 않는다. 누가 적게 마셨소 누구는 약한 술이요 그런걸 따지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술을 거의 차처럼 마시는 경지에까지 왔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이고 아무튼 그런 편한 자리가 돼 간다는 얘기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벌었소 니가 밑졌소를 따지는 일이 점점 적어지기 때문이다. 
   11월 11일이면 상가들에서는 판촉행사에 바쁘고 인터넷쇼핑몰은 초만원을 이룬다. 몇시 몇분 몇초까지 가격이 얼마이고 물건이 얼마밖에 남지 않았다는 초읽기 판촉에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지며 결국에는 지갑을 열게 된다. 해마다 이날은 오건만 왜 해마다 마지막일 것 처럼 벌떼처럼 모여드는 걸가. 이날이 지나면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의 지배를 받아서일가.
   하지만 나는 이런 판촉행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 365일 하루 24시간 열려 있는 쇼핑몰에 왜 하필이면 이날에 몰려들어서 택배도 늦어지는 불편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직 싸다는 리유만으로 별로 필요도 없는 물건을 가득 사들이면 그게 버는 걸가. 벌든 밑지든 그냥 포만감으로 기분이 좋으면 그것도 수확일 것이다. 사람의 기분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깐.
   오늘 아침에는 5시에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탔더니 텅 빈 걸상에 가로 누워 취침중인 승객도 있었다. 비면 어쩌고 한 사람에게라도 편안한 혜택이 돌아가면 그것도 자원의 충분한 리용이다. 옛날 같았으면 앉으라는 걸상에 왜 꼴불견으로 누웠냐며 사진을 찍어 위챗에 올리고 뭐라고 했겠건만 이제는 저 사람도 얼마나 피곤하면 저러겠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서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창밖을 내다보니 제8중학교의 창문들은 이미 불빛이 환하다. 북경은 해전구와 서성구에 좋은 학교가 많고 서성구에서도 제8중학교라면 알아주는 학교이다. 아침 6시인데 벌써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다는 건 8시가 등교시간이라고 쳐도 2시간은 앞당겨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학교가 유명하지 않기도 어렵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나는 기념일을 기억하는 뇌세포가 부족한지 날자에 등한하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기억하기 쉬우라고 11.11에 가셨다. 그렇게 엄마는 가는 마지막 날까지 아들을 배려했다.
   사연이 있는 아침은 단 한번뿐일 때도 있다.
사연 있는 아침은 늦잠이 없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본문은 작가 개인의 견해일뿐 중국조선어방송넷 위챗 계정의 견해나 립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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